최치원과 양저우

신라에서 온 최치원은 12살 때 상선을 타고 당나라에 와서 공부를 했고 국자감에 들어가 공부했습니다. 18살 때 '빈공진사'에 합격했고 이수현위를 맡았습니다. 후에 재능이 뛰어나 회남절도사 고변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막료가 되었습ㄴ니다. 양저우에 가서 역관 순관(고급 문서와 같은 직무)을 맡았고 성루 건설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양저우의 당성 유적지입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16년 동안 공부하고 생활한 다음에 귀국한 후에 자신의 시와 업무 문서를 산문집인 「계원필경집」을 저술했습니다. 그 중에서 많은 양저우 도시의 풍경과 시민들의 생활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계원은 번화하고 양도는 장려하다'는 것은 바로 당시 양저우의 아름다움을 형용한 시구이며 만당의 정치, 경제, 군사 분야의 진귀한 사료도 많이 기여했습니다. 이 저작은 한반도 한문집의 시작작이 되었고 그는 '동국문학의 조상'이자 명실상부한 '한중교류의 일인자'가 되었습니다.

최치원 기념관

최치원은 어렸을 때 당나라에 와서 장안에서 공부하고 양저우에서 벼슬을 했습니다. 양저우는 이미 그의 두 번째 고향이 되었습니다. 최치원 기념관은 한중 수교 15주년을 토대로 건설되었습니다. 이 당나라 풍격의 현대 건축은 당성유적지 박물관의 동쪽에 위치하고 푸른 수풀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관내에는 기념당, 전시장과 연구센터로 나뉘는데 기념당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최치원이 양저우에서 근무한 역사 자료, 문헌 자료와 연구 성과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념관은 최치원이 양저우에서 관리가 된 사적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한중 간의 우의의 다리를 놓았습니다.